[김병호 칼럼] 환경 생각하면 산에서 라면 끓이지 말아야
“한라산에서 라면 국물 남기지 마세요” 한라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환경 캠페인을 전개하는 데 그 내용이 ‘(컵)라면 국물 남기지 않기’다. 캠페인치고는 약간 웃음이 나오는 캠페인이다. 일반적으로 캠페인 하면 거창한데 라면 국물 남기지 않기는 너무 사소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심각하다.
한라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이런 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라면을 먹고 남기는 짠 국물이 자연을 심각하게 훼손하기 때문이다. 라면 국물을 다 먹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사실은 국물을 남기는 사람이 다 먹는 사람보다 많다.
공원 측에 따르면 해발 1700m 윗세오름 대피소에 음식물 처리기 2대가 설치돼 있는데 하루에 120L의 라면 국물 쓰레기가 나온다. 음식물 처리기가 고장 날 때가 있는데 등산객이 짠 라면 국물을 땅이나 골짜기 등에 그냥 부어 버린다고 한다.
이 경우 환경오염이 심각한데 라면 국물 종이컵 한 컵(200mL)을 맑은 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려 물 1460L가 필요하다. 컵라면 국물 한 컵을 버리고, 이를 정화하려면 무려 7300배의 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국립공원공단은 이런 이유로 2016년부터 국립공원 대피소 내 매점에서 라면을 팔지 않도록 했는데 머리 좋은 등산객이 배낭에 라면을 가지고 와서 보온병의 물을 이용해 끓여 먹는다. 매점은 없지만 라면은 계속 먹는다는 얘기다.
보온병 물을 이용해 라면을 끓여 먹으니 일일이 따라다니며 말릴 수도 없고, 또 어디서 라면을 먹는지 알 수도 없다. 등산객의 양심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흔히 ‘라면 국물을 좀 버리면 어떠냐’고 할 수 있는데 내가 버린 라면 국물이 염분으로 인해 식물을 죽인다. 곤충이나 벌레도 죽이고 많이 버리면 산에서 흐르는 물도 오염시킨다. 라면 국물이 이렇게 큰 문제라는 것을 대부분 등산객은 모른다.
이제 봄철이다. 등산객이 늘어나면서 산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사람도 더 늘어난다. 오염이 더 심각해진다. 산불을 내기도 쉽다. 시골에서는 논두렁, 밭두렁을 태우는데 이때도 불이 산으로 번질 위험성이 크다. 기후가 건조한데다 바람까지 많이 불기 때문이다.
산불 말고도 산에서의 취사, 과자봉지와 빵 봉지 등 쓰레기 버리기, 먹다 남은 음식 버리기 등으로 산을 훼손하거나 오염시키는 일도 많이 벌어진다고 봐야 한다. 모두가 등산객의 부주의로, 또는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생기는 일들이다.
우리는 등산할 때 산불에만 신경을 쓸 뿐 라면 국물을 버리는 문제는 미처 생각을 못 한다. 습관적으로 별다른 생각 없이 국물을 산에 버린 사람도 많다. 이제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라면 국물을 버리지 않는 게 환경을 살린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데일리e뉴스= 김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