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호 칼럼] 송전선로 건설은 지자체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과제
동해안 일대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나르기 위해 추진 중인 전기 고속도로가 서울 코앞에서 제동이 걸렸다. 수도권 인구 집중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전기 수요는 폭증하는데 공급이 제대로 될지 걱정이다.
한국전력 등에 따르면 한전은 동해안에서 수도권까지 200㎞ 이상의 동해안-수도권 초고압 직류송전(HVDC) 송전선로를 하남시에 구축할 계획인데 하남시가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주민들이 반대한다는 게 큰 이유다.
하남시는 최근 지역주민 반대 등을 이유로 한전이 신청한 동서울변전소 옥내화 및 증설 사업안을 불허 처분했다. 건축허가 불허로 동해안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수도권으로 오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한전은 2026년 6월까지 기존 변전 시설을 옥내화하고 확보된 여유 부지에 HVDC 변환소를 건설할 계획이었다.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를 통해 들어올 추가 전기를 받아 수도권 일대에 공급하는 곳이 HVDC 변환소다. 사업비는 7000억원 정도다.
문제는 동해에서 올라오는 초고압 송전망의 끝에 HVDC 변환소가 없으면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는 제 기능을 못 한다는 점이다. 이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고속도로를 만들었는데 톨게이트가 막힌 것과 다르지 않다.
한전에 따르면 울진에서 시작된 전기 선로는 양평까지 200Km 이상 이어지다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신가평변환소로, 다른 하나는 하남시의 동서울변환소로 갈라져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한다.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의 용량은 총 8GW(기가와트)다. 이미 착공돼 건설 중인 신가평변환소로 4GW, 하남시가 거부한 동서울변환소로 4GW의 전기가 나뉘어 공급될 예정이다.
하남의 동서울변환소가 건설되지 못하면 8GW 중 4GW만 수도권으로 오고, 나머지는 4GW는 생산을 줄여야 할지 모른다. 4GW는 설비용량 1.4GW인 최신 원전 3기가 만드는 전기량과 맞먹는다. 이렇게 되면 2030년 이후 울진에 건설될 신규 원전 신한울 3·4호기가 생산하는 전기도 처치 곤란이 될 수 있다.
한전은 하남시가 전자파 유해성 등으로 입지가 부적합하다고 한 데 대해 전자파 안전성은 검증이 됐고, 변전소를 옥내화하고 인근 철탑을 철거하면 미관도 개선될 것이라며 반박한다.
입지 선정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1979년부터 한전이 운영 중인 동서울변전소 내에서 시행되는 사업으로 한전은 법과 절차를 준수해 관련 업무를 추진했다”고 밝혔다.
한전은 하남시가 변전소 옥내화가 건축법 1조에서 규정한 공공복리 증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선 변전소는 건축법 시행령상 1종 근린생활시설로 파출소나 지역자치센터같이 주민의 공익을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이라고 강조한다.
한전은 이의제기, 행정소송 등 가능한 모든 절차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하남시가 계속 반대하면 동해안-수도권 전기 고속도로는 결국 법정으로 가야 한다. 실제 소송이 걸리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사업이 큰 타격을 받아야 한다.
전기 고속도로 사업이 중단되거나 지체되면 수도권은 전기대란에 빠질 수 있다. 전기가 수도권으로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으면 동해안의 원전은 전기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 이렇게 되면 어렵게 건설한 원전 가동이 중단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폐쇄하거나 건물의 지하 주차장 입구가 막힌다면 어떻게 될까. 고속도로가 마비되고, 지하 주차장도 마비된다. 전기도 이와 같다. 심각한 문제다. 지자체장들은 주민들의 표심까지도 의식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 사안이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지자체는 변환소를 혐오시설로 보기보다 지역 경제와 주민 생활에 필요한 시설로 봐야 한다. 그래야 전기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수도권의 전기 공급이 원활해진다. 전기가 부족한 수도권, 생각만 해도 암울하다. 하남시와 한전이 원만한 타협으로 전기 고속도로 건설이 차질없이 추진되길 바란다.
[데일리e뉴스= 김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