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기업(Zombie Company)이 은행에서 빌린 돈이 54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좀비기업은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도 못 갚는 기업인데 한계기업으로 부르기도 한다.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벌어들인 돈으로 급여 지급하고, 은행 등 금융권의 대출원금과 이자도 갚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자도 못 갚는다니 숨만 쉰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과 주요 국책은행(산업은행·IBK기업은행·수출입은행)이 좀비기업에 대출한 금액(지난 8월 말 기준)은 54조5000억원. 지난 2019년 말 34조2000억원에 비해 3년 8개월 만에 20조원 넘게 늘었다. 1년에 5조원씩 늘어난 셈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2022년 기준 기업 10곳 중 4곳이 좀비기업이라고 밝혔다. 쉽게 말해 기업 10곳 중 4곳이 번 돈으로 이자도 못 갚는다는 얘기다. 좀비기업이 많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 수 있다. 좀비기업의 부채비율도 8년 만에 가장 높은 102.4%로 치솟았다.
금감원에 자료를 보면 좀비기업 대출액이 최근 3년간 크게 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요 은행이 좀비기업에 빌려준 돈은 지난 2020년 말에 전년 대비 7조4000억원이 늘어 40조원을 넘었다. 이후 2021년 말에 4조9000억원, 2022년 말에 6조4000억원이 각각 증가했다. 돈을 빌려준 은행권도 부담이고, 돌을 빌린 기업은 고민이 더 클 것이다.
항간에는 이자도 못 내는 좀비기업이 왜 자꾸 은행을 드나들며 돈을 빌리느냐고 하는데 고금리 장기화로 회사채나 기업어음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게 해당 기업의 말이다. 좀비기업의 입장에선 설령 돈을 빌리고, 이자를 못 갚더라도 회사 문을 닫을 수 없는 절박함이 있을 것이다.
좀비기업이 늘면서 금융 건전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지적이다. 장기존속 좀비기업이 재기에 성공하기 매우 어려워 자칫 금융권의 잠재적 뇌관이 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좀비기업이 재기하지 못하면 좀비기업의 빚은 어떤 형태로든 금융기관이 떠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좋게 말하면 금융권의 부실 우려지만, 과격한 말로 표현하면 금융권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
금융 상황은 점점 나빠진다. 국내 금리도 6~7%에 달하고, 미국은 현재의 고금리 정책을 한동안 더 밀고 간다고 한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충돌로 하루 새 국제 유가가 5%나 뛰었다. 글로벌 불안이 지속되면 원자재 가격 인상, 원/달러 환율 상승이 불가피한 데 좀비기업에게는 큰 시련이 된다.
좀비기업은 뜨거운 감자다. 겨우 목숨만 부지하는데 은행권의 부실을 초래하면서까지 끌고 가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어려운 기업을 냉정하게 내칠 수는 더욱 없는 노릇이다. 이렇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좀비기업 관리인데 정부와 금융권 모두 부담이 될 것이다.
좀비기업을 죽이기보다 살려야 일자리가 하나라도 더 만들어지는데 정부, 금융권, 좀비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는 게 중요하다. 좀비기업의 심각성을 정부와 금융권, 해당 기업이 먼저 잘 알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좀비기업을 뜨거운 감자로 남겨둬선 안 된다.
[데일리e뉴스= 김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