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를 내고 급발진을 주장하는 운전자들이 급증하자 경찰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급발진은 운전자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차가 갑자기 속도를 높여 앞으로 확 나가는 현상인데 주장은 쉽지만 입증이 어려운 게 특징이다.
운전자들은 사고가 나면 흔히 ‘급발진이다’ ‘차가 앞으로 확 나갔다’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가 급출발했다’ ‘나도 모르게 차가 급출발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운전자에게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국과수가 감정한 급발진 주장 사고는 모두 114건에 달한다. 2023년 한 해의 105건을 이미 초과했다. 11월과 12월을 고려하면 올해는 작년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국과수가 급발진 주장을 감정한 것은 2020년 45건, 2021년 51건, 2022년 67건, 2023년 105건 등이다. 급발진 주장 1건을 수사하는데 최소 1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국과수에 쌓여 있는 사고가 급발진인지 아닌지 다 밝히려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아예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것도 많다고 봐야 한다.
경찰은 사고를 낸 운전자가 급발진이라고 주장하면 국과수에 감정을 요청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문제는 지난 7월 9명의 사망자를 낸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건 이후 급발진 주장이 늘었는데 경찰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국과수는 2020년부터 올해 10월까지 약 5년간 382건의 사고를 감정했다. 이 가운데 실제 급발진으로 판명한 것은 0건이라고 한다. 급발진으로 밝혀진 게 없다는 얘기다. 운전자의 주장과 전혀 다른 결과다.
감정 결과를 보면 85.6%인 372건이 가속페달을 잘못 밟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차량 파손이 심해 감정이 불가능한 경우나 사고기록장치가 없어 페달 오작동을 입증할 수 없는 경우다. 운전자들의 급발진 주장이 모두 허위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연령대별로 가속페달을 잘못 밟은 것은 60대가 45.3%인 148명으로 가장 많다. 70대는 27.2%인 89명, 50대는 18.0%인 59명으로 나타났다. 결국은 50대, 60대, 70대가 가속페달을 밟고 급발진이라고 우기는 셈이다.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90% 정도다.
국과수에 따르면 운전자가 급발진할 확률은 길을 걸어가다 벼락을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말한다. 이 정도면 급발진이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런데도 운전자들은 일단 사고가 나면 급발진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60대, 70대 운전자의 급발진 주장이 많은 것은 이들이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혼돈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예를 들면 브레이크를 밟는다고 밟았는데 실제는 가속페달을 밟는 경우다. 운전자 자신도 모르게 급한 나머지 이런 실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사고를 내면 일단 겁을 먹게 마련인데 고령자들은 특히 더 그럴 것이다. 급발진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책임을 조금이라도 면하기 위해 급발진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는 또 운전자들의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실수로 가속페달을 밟았으면 사실대로 얘기하고, 법의 보호를 받을 것은 받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처벌받는 시민정신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운전자들의 급발진 주장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급발진 주장이 늘어나는 만큼 경찰과 국과수는 바빠진다. 주장만 있고, 실체도 없고, 증명할 수도 없는 게 급발진 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급발진 주장이 나오면 자동차 제조사가 급발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피해자가 급발진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미국과 전혀 반대다. 피해자가 급발진을 입증하기는 불가능하다. 전문 지식이나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급발진은 여러 사항이 정리돼야 한다.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급발진 주장이 나오면 급발진이 아니라는 것을 자동차 회사가 입증하게 해야 한다. 다음은 급발진이라고 주장했는데 급발진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면 비용을 물리거나 어떤 제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함부로 급발진 주장을 못 한다.
[데일리e뉴스= 김병호 기자]